올해부터 시작했던 새로운 습관, learn & trace. 내가 보는 책, 영화, 영상, 아티클 등 인상깊었던 점이나 내용을 간단하게 메모하고 있다. 더 울림이 큰 컨텐츠는 따로 노트에 기록하고 있다. 인상적인 것들만 남기다보니 내가 2021년에 접한 모든 컨텐츠를 적은 건 아니지만, 기록이 모아지니 흥미롭다.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한달에 한 권 이상은 읽은 셈이고, 기록에 남기지 않은 영화나 전시가 더 많겠지만 기록으로 남길만큼 인상적인 컨텐츠들을 많이 접했나보다 싶어서 괜히 뿌듯하다.
올해의 결산 - 16개의 영화, 8개의 다큐, 17권의 책, 12개의 전시, 그 외의 공간과 잡지, 인터뷰들. 가장 최근에 접한 컨텐츠들이 강하게 인상에 남아 있긴 하지만,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몇 개를 뽑아서 여기에 정리해보려고 한다.
2021년의 책 3권
- 죽도록 즐기기 / 닐 포스트먼
가장 최근에 본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이 나오기 시작하던 시점에서 쓴 미래에 대한 통찰이, 지금 사회에 더 적절한 메시지가 된게 아닌가 싶어서 더 울림이 컸다. 인류는 큰 권력의 압박이나 지배에 의해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좇다가 ‘이성’과 ‘사유’라는 큰 자산을 잃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근데, 표지만 보면 즐겁게 살자는 표지 같지 않은가... 디자인 새로해서 다시 나오면 꼭 사두고 싶은 책이다.
- 플랫랜드
물리, 차원에 대한 과학 서적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오래된 책이라 도서관에서도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겨우 빌려서 봤던 책. 차원에 대한 상상력으로 세계관을 만들고 풀어나가는 소설. 기하학 픽션이랄까. 점의 세계, 선의 세계, 면의 세계에서 우리가 사는 입체의 세계까지 축소 확장되는 과정을 느끼면서 한 단계 넘어 4차원은 무엇일까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해준다. 2차원의 사각형은 3차원을 상상하기 위해 '북쪽이 아니라 위로'를 곱씹는다. 우리는 어떤 말로 4차원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각형이 3차원을 경험하는 과정이 우리가 흔히 느끼는 신에 대한 감정과 경외감과 비슷해서 어떤 점에서는 컨택트를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차원을 경험한 자와,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 프로젝트 헤일메리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가 쓴 소설이라고 해서 큰 기대는 없었다. 마션이 영화로 접했을 때 전혀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었는데, 왠걸, 정말 재미있게 읽은 SF 소설. 개인적으로 극한의 상황이지만 긍정으로 살아남기! 우주 활극! 외계인 친구! 이런거 다 싫어하는데, 내가 다 싫어하는 요소들이 만나서 즐겁게 술술 읽히는, 그 다음 장이 궁금해지는 소설이 나온게 정말 신기하다.
2021년의 영화 3개
- 피아니스트의 전설 (The legend of 1900)
올해만 4번을 본 영화. 내가 사랑하는 조합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에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우리가 흔히 쓰는 '영화같다'는 표현이 잘어울리는 영화다. 꿈도 있고, 추억도 있고, 희망도 있고, 이야기도 있고, 사랑도 있고, 아름다운 음악도 있고, 어느 순간 그 속에 흠뻑 빠져 들어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연출의 영화. 엔니오 모리꼬네 사랑해요.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넷플릭스에 최근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반가운 영화. 아직도 몇 장면들이 너무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로 이미지적으로도 인상적이었고, 입체적인 두 캐릭터가 만나고 변하는 과정이 정말 아름다웠던. 오늘 다시 봐야지.
- 델마와 루이스
리들리 스콧은 SF를 하지 않아도, 뭘 하든 세련되고 개척적이구나. 저 영화 포스터만 봐도 마음 한 켠에서 어딘가로 탈출하고자 하는 용기가 생긴다. 델마 혼자였다면, 루이스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고, 그 둘 다 유약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이었기에 저 자유로의 탈출이 빛난다.
2021년의 다큐 3개
다큐에 대한 리뷰는 이 곳에도 몇 개 남겼고, 사실 3개를 꼽기 힘들 정도로 좋은 다큐들만 접했던 운이 좋았던 2021년. 그럼에도 3개를 꼽아 보자면. 짧은 후기 대신에 링크.
- Trillions of Questions, No Easy Answers: A (home) movie about how Google Search works
https://designpostscripts.tistory.com/12?category=959471
- Ryuichi Sakamoto : Coda
https://designpostscripts.tistory.com/18?category=959471
-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https://designpostscripts.tistory.com/21?category=959471
2021년의 전시 3개
사실 전시는 여기에 적어도 다시 가서 감상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 MMCA
전시 이름을 딱히 적지 않는 이유는 MMCA에서 올해 접했던 전시들이 다 참 좋았기 때문에. 정상화 같은 한국 작가를 조명하는 전시들이 굉장히 좋았고, 최근에 이건희 소장품 특별 전시에서도 느낀거지만, 한국 작가들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묘한 안정감이 있다. 미감이 맞는건지, 유명한 작가의 작업을 우러러 보게 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감각이다. 한국 작가 뿐만 아니라, 큰 전시는 아니였지만 '움직임을 만드는 움직임' 이라는 초기 애니메이션 작업에 대한 전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직접 꼭 보고싶었던 Kimchi and Chips의 Halo도 덕분에 볼 수 있었고, MMCA에 이렇게 자주 간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좋은 전시가 많았던 한 해.
- 매거진 B 10주년 기념 전시
전시 뿐만 아니라 조수용 매거진 B 발행인의 토크 콘서트를 함께 갈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그의 브랜드에 대한 접근과 관점, 그리고 넓게는 디자이너 출신의 경영인으로써의 자세나 생각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울림이 컸다. 게스트로 김봉진 배달의 민족 의장도 함께 해주셨는데, 그 분 또한 디자이너 출신의 경영인이었기 때문에 그날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디자인이나 감각, 성장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것도 뜻깊었다. 올해 들어 가장 크게 나를 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 시간.
전시도 분명 좋았는데, 토크 콘서트가 너무 좋아서 기억이 희미해져버린.
- 리움 재개관
기획전도, 고미술전도 좋지만, 리움의 현대미술 컬렉션 너무 정말 진짜 완전 좋았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접하게 된 이런 저런 전시들이 쌓이고 나니, 그저 유명한 작가의 전시니까 보던 것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지 싶던 고미술이나 공예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한계를 느낀다. 와 대단하네, 신기하네, 이상의 감정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점이나 의문을 제시하는 현대미술을 보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는 중인 듯 하다. 특히 리움의 현대미술 컬렉션은 내가 관심있어 하는 물리, 차원, 관점, 물성에 대한 작업이 많아서 더 즐겁게 볼 수 있었던 듯 하다. 또 가야지.
2022년엔,
올해 만든 이 습관을 좀 더 꾸준히 이어가볼 예정. 하지만 염두에 둘 건 많이 보다는 깊게 감상하고 사유할 기회로 삼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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