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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소비예찬

아아 아름다워

 
오랫동안 오븐 장갑과 주방용 손 닦는 수건이 없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필요해도 잘 안사는 성격이라, 이사 초반에 열심히 마음에 디자인을 찾아다녔으나 못찾아서 결국 일반 수건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간 Marimekko 매장에서 너무나 맘에 쏙 드는 장갑과 수건 세트를 발견했다. 세트로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한참을 망설였지만, 이게 아니면 내 평생 오븐 장갑과 주방용 수건을 못 살 것 같았다.

정말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샀을 때의 행복과 희열이란. 사실 사와놓고 너무 아름다워서 한 번도 안쓰고 눈으로만 즐기고, 아직도 일반 수건에 손을 닦고 있다. 마음에 쏙 들 때까지 못 사는 나의 습관은 미련하기 그지없지만서도, 정말 딱 마음에 드는 물건을 샀을 때의 그 희열 때문에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ROI를 생각한다면, 아무 감흥 없는 물건을 적당한 가격을 주고 샀을 때의 경험은 그 실용적 가치 이외는 없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물건을 샀을 때는, 잠깐 그 물건을 쓰는 순간들이 다시금 그 희열을 떠올리게 해주고 그 행복감과 가치를 탐미하게 된다.

디자이너로써, 누군가가 내가 만든 무언가를 그 정도의 희열로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디자이너가 궁극적으로 이를 수 있는 최고의 위치는 많은 유저, 많은 소비자를 유치하는 것도 아닌, 마치 ‘팬’같은 나의 작업을 열정적으로 탐미해주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 때가 아닐까. 너무나 많은 물건과 서비스가 존재하는 이 시대에 더 어려워지는 일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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