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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계절이 그리워

21년의 어느 날 합정

싱가폴의 날씨에 크게 불만을 가져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춥고 움츠러드는 시기가 없는 것에 감사했는데, 오늘 한국의 폭설 소식은 그 코 끝의 찬 공기와 사각거리는 눈 밟는 소리가 그리워지게 만들었다. 눈에 시큰둥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친구들이 보내주는 사진에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보고 놀랐다. 싱가폴의 영원한 여름 속에서 살다보니 이렇게 생각이 바뀌나보다.

이제는 여행도 시원한 곳에 가야 정말 여행을 온 것 같고, 비슷하게 더운 휴양지에 가면 계속 싱가폴에 있는 기분이다. 보는 것, 먹는 것 보다도, 온 몸으로 느끼는 기온에서 새로운 도시에 왔다는 느낌이 제일 감각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작년 5월, 멜버른에 갔을 때의 간만에 느낀 가을 바람이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긴 팔 자켓,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손 안의 따뜻한 라떼까지, 어떤 풍경보다도, 그 감각이 제일 선명하게 기억난다. 앞으로 다시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살면서 가을을 맞이하더라도, 그 때의 감각만큼은 아닐거란 생각이 든다. 

싱가폴에서의 2년 반, 이제는 이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영원한 여름이 조금은 지겹고, 아 추워졌네, 아 더워졌네, 하는 그 생각들이 그립다. 아마도 곧, 이 영원한 여름에서 탈출해서 다시 사계절의 나라로 돌아갈 것 같다. 그 때가 되면 또 이 영원한 여름을 그리워하게 될까. 우기라서 쉽진 않지만, 그래도 남은 기간 싱가폴의 날씨를 좀 더 지긋히 바라보고 느끼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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