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10 - 봤던 영화, 드라마를 다시 본다는 건

그 때는 너무나 세련되어 보였던 이 드라마가 조금은.. 낡아보이네

요즘 고르는 영화마다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래서인지 보려고 담아둔 긴 영화 리스트가 아닌 봤던 영화인데 희미해져 가는 영화들을 다시 보고 있다. 최근에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봤고, 지금은 '셜록'을 보고 있다. 아무래도 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본다는 건 내가 정말 좋아했던 작품이라는 건데, 다시 보게 되면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영화의 디테일을 다시금 새겨보게 되기도 하고, 이 작품을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나는 어땠는지, 왜 좋아했을지, 그 영화를 다시 보는 이상으로 이런 저런 생각거리가 있는게 재미있다. 당당하게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이유, 그 디테일들은 금방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걸 다시 선명하게 만들면서도, 그 때가 아닌 지금의 시점으로 다시 봐도 또 재미있게 보는 나를 보면서,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혹은 이 작품이 나의 취향에 영향을 끼쳤에 아직도 이게 재미있는건지.

 

고등학생 때 난 영국 드라마 셜록에 푹 빠져있었다. 야자 시간에 음악 대신 그 드라마를 틀어놓고 들었고, 친구들한테 열심히 추천하고 다녔더니, 어느 순간 학교 전체에서 유행했던 이 드라마. 씬 전환부터 연출까지, 스토리나 캐릭터 이상으로 날 매료하는 요소들이 가득했던 이 드라마가, 지금 내가 영화를 즐겨보게 만드는 데에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다음 직장을 위해 런던으로 가는 나에게, 런던과 영국인에 대한 이미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건 이 드라마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긴 코트와 파란 목도리는 극 중 셜록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에 종종 나오는 워커홀릭, 유능하고 일에 푹 빠져있는 사람에 대한 동경의 시작은 이 작품이었을까? 다시 보는 이 작품이 재미있으면서도, 지금의 나는 이렇게 유능한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보단, 점점 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나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내가는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차이점을 느껴보기도 하고. 

 

인생은 도장깨기같은 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랬을 수도 있다. 세계의 몇 십개의 국가를 여행해봤다, 이만큼의 책이나 영화를 봤다, 그런 것들. 하지만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봤던 영화를 다시 보고, 가봤던 도시를 다시 가보고, 그 경험의 반복에서 그제서야 알게 되는 나에 대한 이해, 그 사이의 시간과 경험에서 달라진 나의 생각과 모습들을 발견하는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래서 올해 다시 방문했던 샌프란시스코가 그렇게 새롭고 재미있었고, 다시 보는 셜록이 그 작품 자체보다도 내 스스로를 생각하게 만드는가보다. 그리고 재미있지 않은가, 보는 형태 자체도 얼마나 달라졌는지. 겨우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를 찾아내서 한참을 기다려서 다운받고,자막을 구하던 그 시절과 달리, 편하게 넷플릭스에서 떠먹여주는 리스트 중에서 골라보는 지금의 나.

거의 10년만에 본 셜록, 또 다음 10년 후에도 보게 될까. 그 때의 나는 어떤 생각이 들까. 

728x90

'week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 헤어짐은 언제나 어려워  (0) 2024.12.07
8 - 계절이 그리워  (1) 2024.11.28
7 - 운동을 하는 것과 배우는 것의 차이  (0) 2024.11.17
6 - 일상의 조각들  (4) 2024.11.10
5 - 과거의 작업들을 돌아보며  (0) 2024.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