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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네트워킹 - 소소한 요령들

이직을 확정하고, 2년 간의 싱가폴 생활을 돌아보면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네트워킹이었다.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중 몇 명과는 실제로는 만난 적도 없지만 종종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고, 꽤 자주 만나는 친구가 되었고, 여러 도움과 조언, 응원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이직을 하게 된 가장 큰 발판이 되었다. 예전에는 오프라인 밋업도, 온라인 커피챗도 매번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생긴 소소한 요령들에 대하여. 

 


1.  다른 사람들이 쉽게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세팅해두기 

내 커피챗 예약 페이지. 구글 캘린더에서 무료로 사용 가능한 기능이다.

온라인에서 내 작업을 자주 공유하면서, 가끔 원격으로 커피챗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성스러운 메일로 내 작업에 대한 좋은 코멘트를 건네면서 한 번 통화하고 싶다는 감사한 분들도 있지만 이메일을 몇 번이나 교환해야 하고, 좀 더 나에게 커피챗 요청하는 과정을 편하게 해두면 더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실 듯 했다. 그래서 Calendly / Google Calendar같은 서비스를 이용해서 내가 통화가 가능한 시간을 상대방이 바로 확인하고 요청을 할 수 있도록 세팅을 해두었더니 훨씬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신다. 특히 시차 따로 고려해가며 약속 잡을 필요가 없어서 여러 나라의 디자이너와 연결하기에 정말 편리하다. 예전엔 Calendly를 결제해서 사용했었는데, Google Calendar가 이미 무료로 이런 기능을 제공하고 있고, 심지어 다른 일정들과 연동하여 겹치는 시간대는 자동으로 예약을 받지 않아서 훨씬 편리하다. 

30분 정도면 적당하게 서로가 어떤 작업을 하는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더 긴 대화가 팔로업을 잡으면 되어서 딱 적당하다. 한 번 통화를 해두면 메시지를 하기에도 더 편한 사이가 되어서, 그 이후로도 서로 질문을 하거나 안부도 묻는 좋은 온라인 친구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요청하는 사람에게 간단하게라도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알려달라고 하면, 거창한 준비는 아니어도 대화 주제를 예상하고 들어갈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나는 보통 들어오는 커피챗 요청은 다 받는 편이다. 인연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기대하지 않았던 대화를 너무 재미있게 하는 경우도 많아서, 바쁘지 않은 선에서는 안거르고 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니어 디자이너나 학생들과의 대화는 좀 망설여졌는데, 이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나도 다시금 초심을 다잡거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면서도 깨닫는게 많다. 

(이 블로그는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진 않지만, 혹시나 저와 대화하고 싶으신 분은 여기에서 커피챗 신청이 가능합니다 😊 )

 

 

2. 온라인에서 '안면' 쌓기 

온라인에서의 네트워킹은 내가 좋은 작업을 해서 소셜에 공유하는 방법 뿐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올리고, 사람들이 반응을 해주고 팔로우를 해주길 기다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원칙 - 결국 소통은 쌍방향이라는 것이다. 남들이 내 작업에 반응을 해주길 기다리듯이, 나도 좋은 작업에 반응하고 질문하고, 먼저 메시지를 주고받다보니 내가 작업을 활발하게 올리지 않을 때도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었다. 온라인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올리고 반응을 하지만, 몇 번 주고받다보면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과도 괜히 친밀감을 느끼고, 안면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특히 작은 커뮤니티, 내가 많은 도움을 받았던 read.cvposts.cv는 트위터처럼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곳이 아니고, 커뮤니티의 모든 글을 충분히 볼 수 있을 만큼 소규모 커뮤니티라서 며칠 보다보면 어느 계정이 어떤 작업을 하는 사람인지까지 눈에 익게 된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도 나를 인식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따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 없음에도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다.

 

 

3.  온라인 <> 오프라인의 관계를 잘 연결하기 

솔직히 디자인 컨퍼런스나 오프라인 밋업은... 마치 네트워킹 공장처럼 뻔한 질문들을 하다가 마지막에 링크드인을 서로 교환하는 걸로 끝나는 식이라서 의미있는 인연을 만든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의 대화가 효과적이었던 경우는, 이미 온라인으로 알게 되었거나 메시지를 교환했던 사람을 오프라인으로 만났을 때이다. 서로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어떤 작업을 하는지를 알고 만나는 경우에는 더 뾰족한 질문을 교환할 수 있다보니 대화의 질이 훨씬 높다. 그리고 '온라인 지인'이었던 서로에게 실체를 부여함으로써, 그 이후에 온라인에서 메시지를 교환해도 훨씬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지게 된다. 실제로 이번에 이직하는 곳은 그 회사 디자이너와 온라인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몇 번 이야기를 했다가, 내가 이직 준비중이라고 하니 자기 회사에 지원해보라고 정보를 줬고, 그 회사 디자인 헤드와도 트위터로 서로 팔로우가 되어있어서, 헤드쿼터가 있는 도시에 방문한 김에 커피를 마시면서 시작되었다.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연락을 했다면, 만나자고 수락했을까?

내 오프라인 네트워킹용 웹사이트. 진짜 간단한 원페이지 짜리 페이지에 내가 쓰는 소셜 플랫폼들 QR 코드를 다 저장해두었다.

반대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과도 무조건 링크드인으로 연결하는게 아니라, 상대방이나 내가 더 활발하게 사용하는 소셜 플랫폼에서 연결되는 편이 좋다. 나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오프라인에서 만난 디자이너들 누구도 활발하게 링크드인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네트워킹용 플랫폼이라는 통념 때문에 보통은 링크드인을 교환한다. 하지만 연결이 되고 나서도 자기 작업을 링크드인에 잘 올리지 않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이가 온라인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내가 활발하게 작업을 공유하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으로 연결을 해두면, 밋업 이후에 보고 연락을 주고받게 되거나, 내 오프라인의 실체에 '아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좀 더 특징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위의 이미지는 내가 만든 원페이지짜리 오프라인 네트워킹용 웹사이트다. 아래 종이 가닥(?)을 뜯으면 그 소셜 플랫폼의 QR 코드가 뜬다. 너무나 간단한 디자인이지만, 이 사이트 하나로도 디자이너들이 어떤 툴로 만든 웹사이트인지, 다른 소셜 플랫폼은 뭐가 있는지 이야기가 이어지고, 미약하게나마 내 디자인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기도 해서 시간 투자 대비 정말 유용하게 쓰고 있다. 

 


마치며 

시간이 지나며 네트워킹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이직을 위해서, 인맥을 쌓기 위해서 좋은 회사 다니는 사람과 알아두는, 목적이 다분한 만남과 대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의도로 임하는 사람들도 가끔 보긴 하지만, 결국은 회사 밖에서, 비슷한 업을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필요할 때 서로 응원하고, 도움받고, 또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실제로 만나서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았어도 좀 더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온라인 '지인'을 넘어 온라인 '친구'로 느껴지는 사람들이 생겼고, 이런 스쳐가는 인연일지 모르는 사람들을 좀 더 깊고 긴 인연으로 만드는 건 내 노력에 달렸다. 모두를 친구로 만들 필요도 없고,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이, 정말 좋은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는 절로 친해지고 싶어지고, 대화가 잘 맞는 사람들과는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앞으로 런던으로 이직해서도, 이런 소중한 인연을 계속 만들어가고, 쌓아갈 수 있길. 그리고 이 글이 예전의 나처럼 커피챗이 부담스러운 누군가에게, 또는 물리적으로 네트워킹 이벤트에 갈 수 없어서 불안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시간이 난다면 다음 글에선 네트워킹이 나의 이직까지 이어진 과정에 대해서 글을 남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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