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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관광객와 로컬 그 경계에서

이번주의 순간들

런던 1주차. 지하철이나 택시 타는 것, 필요한 물건 사는 것, 하다 못해 길 건너는 것 마저 헤메는 아직은 너무나 서툰 관광객 모드다. 특히 얼마나 많은 곳에 바보 비용을 냈는지, 굳이 비싼 돈 내고 장보고 온 거, 공항에서 지하철 타면 더 빠르고 싸게 올 걸 20만원 가까운 금액으로 택시타고 온 것... 억울하지만 이 첫 한달의 바보비용을 내야 이 곳에 살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너그럽게 지내보려고 애쓰고 있다. 길 건널 때도 왜 어떤 신호등은 반대편이 아닌 내 쪽에 빨간불 / 초록불이 켜지는건지, 왜 로컬들은 아무도 신호등을 안지키는 것 같은지, 태연한 척 하지만 모든 순간 동공지진 중이다. 그리고 영국 발음... 솔직히 한 50%는 못 알아 듣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관광객 모드인 것 치고, 온 5일 내내 집 보러 다니고 살만한 동네 파악하러 발품을 파느라, 런던에 왔다고 느껴질 법한 것들, 미술관이나 궁전, 빅벤이나 이런 저런 브릿지들을 전혀 보지 못했다. 런던에 오긴 한건가? 싶은 상태. 시차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의 지쳐 잠드는 날들이 이어지다보니, 거의 출장을 온 느낌이다. 그래도 이 동네, 저 동네, 회사 밀집 지역, 힙하지만 치안이 좋지 않아보이는 곳, 좀 더 런던스러운 멋진 건물이 즐비하지만 집이 안좋은 곳, 힙하고 치안이 좋지만 비싸서 매물이 없는 곳... 관광객이 아닌 앞으로 살아갈 도시로 바라보는 런던은 참... 다채롭다. 나는 결국 어디에 뿌리내리게 될까. 그래도 싱가폴을 한 번 거쳐서 어마무시한 렌트에도 그나마 충격이 덜하고, 저번에 비해 이 과정을 더 알차게, 즐기면서 보내고 있다. 

 

싱가폴에서 집을 볼 때는, 해외에서 집을 구하는게 처음이니 걱정만 가득하고, 이런 저런 동네 보는걸 즐기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트집잡고 걱정하고, 그러면서도 집은 결국 몇 군데 보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그런거 치고 좋은 집에서 잘 2년 반을 보냈다. 그 과정을 거치고 이번 런던 하우스 헌팅 과정에선 내 발로 발품팔아서 런던의 동네들을 파악하고, 각 집마다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것을 포기해야할지 받아들여가면서 비교하고, 무엇보다도, 조만간 내 집이 나타날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집을 보고 있다. 만날 인연은 만나듯, 만날 집도 만난다. 

 

지난 5일 너무 시차적응도 안된 채로 많이 걸어다니고 피곤해서 오늘은 조금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South Kensington쪽 집을 보러 온 김에, V&A 뮤지엄의 카페를 가려고 하다가, 생각보다 시끄럽고 별로라서 나와서 길가의 아무 카페나 앉았다. 여행으로 왔으면 기를 쓰고 그 곳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전시까지 봤겠지만, 나는 앞으로 여기에 살 사람인걸, 이란 생각으로 뮤지엄을 나오면서 이게 런더너의 사치구나 싶었다. 5일차에야 비로소 이 도시가 당분간 내 집이 될 곳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안녕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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