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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호크룩스같은 공간들
약 1년만의 서울. 돌아왔는데도 돌아온 게 실감이 나지 않는 며칠을 보내다가, 일주일차가 된 오늘에서야 내가 가장 사랑했던 카페, 앤트러사이트 합정점에 왔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비로소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벅차오르는 마음에 크게 한 숨을 들이마셨는데, 여기에 두고 온 내 영혼이 들어온 기분이 들 정도로, 내 안의 무언가가 다시 채워진 기분이었다. 이 공간을 떠나있었던 시간이 무색하게, 내가 자주 앉던 그 자리에 앉으니 내가 있어야할 곳에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바뀐 의자와 테이블의 높이, 위치는 묘하게 맘에 들진 않지만...) 이 말을 들은 친구 두 명이나 똑같이 그 카페가 니 호크룩스냐는 농담을 했다. 그 농담을 들으며 이 공간이 파괴되는 상상을 해보면..
디자이너의 네트워킹 - 소소한 요령들
이직을 확정하고, 2년 간의 싱가폴 생활을 돌아보면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네트워킹이었다.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중 몇 명과는 실제로는 만난 적도 없지만 종종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고, 꽤 자주 만나는 친구가 되었고, 여러 도움과 조언, 응원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이직을 하게 된 가장 큰 발판이 되었다. 예전에는 오프라인 밋업도, 온라인 커피챗도 매번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생긴 소소한 요령들에 대하여. 1. 다른 사람들이 쉽게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세팅해두기 온라인에서 내 작업을 자주 공유하면서, 가끔 원격으로 커피챗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성스러운 메일로 내 작업에 대한 좋은 코멘트를 ..
2024년의 책과 영화들, Best 3
24년은 생각보다 많은 책과 영화를 소비하진 못했다. 20권의 책을 목표로 했지만 19권에 그쳤고, 영화/시리즈도 19편으로 한 편도 보지 못한 달들이 여러 달 있을 정도다. 특히 영화는... 본 걸 후회하게 되는 작품들도 많이 봐서 베스트를 꼽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꼽아보는, 올해 나에게 가장 큰 영감과 영향을 준 최고의 작품들. 책 - Filterworld제품이 무료면 사용자 자신이 제품이라는 식의, 소셜 네트워크의 악영향에 대한 이젠 너무 많이 알려진 이야기가 아닌, 알고리즘화된 미디어가 문화와 소비자의 취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Kyle Chayka의 . 개인의 취향이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서 궁금하고 관심이 많던 차에 읽어서 나에게 시기도 적절했고, 어느 도시에 여행을 가도 비슷해..
10 - 봤던 영화, 드라마를 다시 본다는 건
요즘 고르는 영화마다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래서인지 보려고 담아둔 긴 영화 리스트가 아닌 봤던 영화인데 희미해져 가는 영화들을 다시 보고 있다. 최근에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봤고, 지금은 '셜록'을 보고 있다. 아무래도 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본다는 건 내가 정말 좋아했던 작품이라는 건데, 다시 보게 되면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영화의 디테일을 다시금 새겨보게 되기도 하고, 이 작품을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나는 어땠는지, 왜 좋아했을지, 그 영화를 다시 보는 이상으로 이런 저런 생각거리가 있는게 재미있다. 당당하게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이유, 그 디테일들은 금방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걸 다시 선명하게 만들면서도, 그 때가 아닌 지금의 시점으로 다시 봐도 또 재..
9 - 헤어짐은 언제나 어려워
오퍼가 공식적으로 나오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빨리 받아야 퇴사 선언도 하고 이사 준비도 시작할 수 있어서 마음이 조급했는데, 막상 나오고 나니 모든 일이 서운할 정도로 일사천리다. 퇴사 선언이 밈처럼 홀가분하고 통쾌할 줄 알았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이 이직이 옳은 선택일까, 적응이 된 이 울타리를 벗어나는게 긴장되고, 특히 약 3년을 함께 일한 팀원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들의 서운하면서도 기쁜 표정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다른 사람들이 퇴사를 할 때 그 소식을 들으면서 괜히 싱숭생숭했던 그 기분을 선명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팀원들이 어떤 기분일지 이해가 가서 더욱 더 미안하다. 한 명은 심지어 울어서, 나도 울 뻔 했다. 이렇게 퇴사 선언이 홀가분하지 않을 줄이야. 이사 날짜도 일사천리로..
8 - 계절이 그리워
싱가폴의 날씨에 크게 불만을 가져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춥고 움츠러드는 시기가 없는 것에 감사했는데, 오늘 한국의 폭설 소식은 그 코 끝의 찬 공기와 사각거리는 눈 밟는 소리가 그리워지게 만들었다. 눈에 시큰둥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친구들이 보내주는 사진에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보고 놀랐다. 싱가폴의 영원한 여름 속에서 살다보니 이렇게 생각이 바뀌나보다.이제는 여행도 시원한 곳에 가야 정말 여행을 온 것 같고, 비슷하게 더운 휴양지에 가면 계속 싱가폴에 있는 기분이다. 보는 것, 먹는 것 보다도, 온 몸으로 느끼는 기온에서 새로운 도시에 왔다는 느낌이 제일 감각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작년 5월, 멜버른에 갔을 때의 간만에 느낀 가을 바람이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도,..
픽셀 폰트 - 8x8, 그 제한된 공간 속 무한한 표현들
Config 2024를 갔을 때, 만난 사람들에게 어느 토크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 픽셀 폰트 토크!' 라고 했다. 아쉽게도 나는 다른 세션과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갔는데, 이제야 생각이 나서 찾아봤다. Figma의 Design director인 Marcin Wichary의, 과거 디스플레이 기술이 좋지 않았을 때 사용되던, 한 글자 당 8x8 픽셀 안에 그려지는 픽셀 폰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의 디스플레이는 일부러 왜곡된 이미지가 아닌 이상에야 깨진 픽셀들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선명하고 촘촘해졌는데, 이 세션에서는 과거 아이팟, 예전 컴퓨터 GUI, 게임 그래픽에서 사용되던 폰트들을 소개한다. 8x8. 한 글자 당 64개의 픽셀 안에서 대문자, 소문자, serif, san-s..
7 - 운동을 하는 것과 배우는 것의 차이
혼자 러닝을 한다던지, 복싱에 가서 혼자 샌드백을 친다던지, 혼자 묵묵히 그 날의 운동을 끝내고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싱가폴에 온 이후로는 그런 혼자 하는 운동 시간이 반, 코치가 하는 수업을 듣는 운동 시간이 반이다. 내가 사는 콘도에 테니스 코트가 있어서 레슨을 신청하면 코치가 직접 와서 수업을 해줘서 테니스도 배우고, 평소에 하던 복싱을 계속 하고 싶은데 싱가폴은 아무 시간대나 가서 시설을 쓰는 복싱장보다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신청해서 가야되는 식이라서, 복싱도 코치와 함께 하고 있다. 혼자 편한 시간에 가서, 조용히 생각 정리 하고 오는 맛으로 운동을 했다보니, 처음에는 운동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미리 일정을 잡아서 가야하고, 옆에 계속 코치..
[작업기] Sites.cv와의 콜라보 - Booklet 웹사이트 템플릿
Read.cv를 아시나요?Read.cv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부터 프로덕트 관련 직종의 유저들이 많은 커뮤니티다. 개인의 resume를 온라인상에서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LinkedIn의 정제된 버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서비스를 확장해서, Post.cv (read.cv 유저들의 소셜 네트워크), Sites.cv (read.cv의 프로필을 바로 웹사이트로 바꿔주는 서비스)까지 3개의 플랫폼이 있다.Read.cv에서 활동한 지는 1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이 곳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도 많고, 확실히 커뮤니티가 작다보니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와는 다른 느낌으로 더 실속있는 네트워킹이 가능하다. 네트워킹이라는 단어를 쓰는게 미안할 정도로, 관련 업계 안에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느낌이랄까. 실제로도 이 플..
6 - 일상의 조각들
블로그 챌린지 하던 친구들이 포토덤프를 올리는게 좋아보였는데, 주말인 김에 갤러리에서 이번 주의 사진들을 모아 올려본다. 사실 요즘 모든 정신이 면접 준비에 가있어서 일상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있겠지. 일상이 단조로워질수록 생각도 단조로워지고, 나의 표현도 단조로워진다. 책으로, 사람으로, 혼자 뭔가 만드는 시간으로 그런 단조로움을 채워오던 나였는데, 요즘은 그런 시간이 없으니 내 갤러리도 단조롭구나. 그나마 하늘을 올려다보고, 좋은 날씨에 감탄하고 감사하는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던 나 칭찬해. 남은 며칠만 고생하고, 다시 내가 사랑하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